영화 '올 이즈 로스트'는 대사가 영화러닝타임 통틀어 2~3개인가 될 것입니다.그것도 문장이 아닌 감탄사가 전부 ㅎㅎ 그래도 영화를 본 후에 이렇게 깊게 마음에 울림이 있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주연은 로버트 래드포드. 얼핏보면 포스터도 그렇고 재난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재난영화 특유의 기승전결이 없이 그저 힘든상황이 왔을때 주인공의 모습을 그저 관망하듯이 비춰주고 있습니다.스포랄 것도 없이 인도양에서 혼자(절대 항해는 혼자하면 안됨)요트를 타던 로버트 래드포드가 컨테이너에 충돌하여 사고가 나고 그 이후로는 닥쳐오는 온갖 위험에 대처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된 로버트 래드포드이기 때문에 뭔가 더 짠했어요.
처음에 사고가 난 후에는 침착하게 구조무전을 쳐보기도 하고 침수된 물을 빼내기도 하고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하는 모습으로 영화에서 비춰집니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그래? 그럼 이건 어떻게 할래?"라는 식으로 악화가 되가죠.혼자 안간힘을 쓰면서 구명보트로 옮겨타면서 마실 물, 과자를 구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계속해서 상황은 오히려 새로운 고난의 미션을 줍니다.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할 상황.말을 섞을 동료하나없이 망망대해에서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해쳐나가는 모습이 마치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의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망대해에서 고독하게 홀로 삶이 미션을 해결하면서 살아오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다보니깐 오래전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의 심정을 더 잘 느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힘들어도 그 내색을 자식과 아내에게 그대로 할수없는 존재이기때문에 우리는 다만 모르고 있습니다.그간 어떠한 삶의 미션이 아버지에게 주어졌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헤쳐왔는지.
주인공은 로버트 래드포드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일단 받아들입니다.그리고 할수있는 대처를 차분하고 무덤덤하게 합니다. 물론 그안에 좌절과 공포가 마음속 깊이 있겠지만, 일단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행동을 합니다.
폭풍우가 쳐서 물이 고이면 일단 물을 빼내고 닻이 고장나면 올라가서 닻을 고치기도 하지요.좌절을 하고 억울하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절규할 법도 한데 주인공은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합니다.비가 몰아치는 밤바다에는우비를 입고 돛을 잡으며 배가 뒤집히듯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에는 안전벨트를 매고 짐칸에 들어가 버팁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습니다.그저 미션을 받아들이고 할수 있는 행동을 하죠.
정년 이후의 삶을 생각해본적이 없다.
15년전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할때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60 평생 인생 다 살았다!" 지금은 70세가 넘지만 그때 들었던 아버지의 말에선 그동안 살아오고 버텨온 자신에 대한 격려와 동시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알수없는 불안감이 함께 느껴졌어요.
퇴직하고 집에 있게된 아버지는 한동안 무기력했고 초라해졌습니다.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경력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정년퇴직자한 경력자보다 젊은 경력자를 선호했고 그렇게 아버지는 '무능력'한 사람이
한순간에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체적으로 사업을 해본 적도 없이 그저 조직에서 시키는 일만을 성실하게 하면서 살아온 아버지에게 사업은 그저 위험한 도박에 지나지 않았지요.지인회사에서 잠시 사외이사를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사이가 틀어져서 못하게 되고 지금까지 집에서 그저 일없이 지내고 계십니다.
그동안 삶의 미션을 버텨내오신 것도 존경스럽고 갚아야할 은혜인데 왜 그렇게 약해지시는 것인지. 차라리 마음껏 여행이다 취미다 즐기며 사는 노후면 좋겠는데 그것조차 죄책감인지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올 이즈 로스트. 모든 것을 잃다. 마음만 빼고.
고난앞에서 깊게 패인 주름과 표정이 대사없이도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구조를 위해 흔들던 비상조명탄이 무색하게 멀어지는 선박을 보는 표정도 대사가 필요없을만큼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만큼 삶은 새로운 레벨의 미션을 던지는데 계속해서 헤쳐나가게끔 행동을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에게는 가족이란 소중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주인공 역시 좌절해서 소리를 한번치고 나서는 집에 있는 가족, 손자손녀의 얼굴을 떠올렸을 지 모릅니다. 그것만으로 미션을 해결하기 위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모든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때 비로소 그토록 바래왔던 구원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영화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년 이후의 삶. 아버지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왜냐면 치열하게 쉴새없이 밀려드는 삶의 미션을 해결하기도 벅차셨을테니깐요.퇴직 이후 10년이 넘어가면서 그래도 아버지는 나름대로의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계신듯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남대문시장을 가시기도 하고, 친구와 등산도 가시면서 하루 중 그래도 꼭 어딘가를 외출하고 돌아오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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